지리산을 등반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 설악산 대청봉이나 한라산 백록담에 오른 적은 있다. 그러나 그 때의 기억은 뚜렷하지 않을 뿐더러, 남아 있는 기억에서도 어린 나는 부모님이 업어주거나 양 손을 잡혀 안전하게 산에 올랐다. 아, 한 가지 기억이 더 있다. 등산로 초입에는 물든 나뭇잎이 가득 떨어져 폭신폭신했고, 아버지는 바닥에서 길고 제법 굵은 나뭇가지를 주워 지팡이처럼 짚고 가면 편하다고 내게 쥐어주었다. 그 때는 그 지팡이가 왜 편한지 알지 못했다.

지리산 등반을 하는 나는 성인이 되었고, 챙기는 짐은 그만큼 많아졌다. 어린 나는 운동화를 신었고, 모든 짐은 부모님이 챙기고 등에 짊어지셨다. 내 손에는 나뭇가지를 쥐어주셨을 뿐이다. 성인인 나는 운동화 대신 등산화를 신고, 아이젠을 챙겼다. 나뭇가지를 줍는 대신 등산스틱을 챙겼다. 1박 2일치 짐을 내 배낭에 꾸역꾸역 넣어 내 어깨에 짊어졌다.

그러나 이제껏의 다른 등산과 가장 다른 것은 역시 산장을 예약했다는 점이었다. 혹시 새벽에 일어나 천왕봉에서 일출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이왕 지리산에 간다면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서였다. 멀쩡하게 하루를 보내고도 아침잠이 많은 나라는 사람이, 하루 종일 산을 오른 다음 날 아침 일출을 볼 의지를 가지다니. 흔치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산에서 하룻밤을 잔다. 음식도 만들어 먹는다. 비록 산장이라는 건물 안에서의 일이지만, 다 처음이었다.


모든 것이 처음이라는 것을 좋아하는 도전적인 사람들도 있지만 내 성격은 그렇지 못하다. 굳이 도전거리를 찾지 않고 현재에 안주하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그런다고 현재에 안주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앞서서 걱정을 하지도 않는다. 지리산에 올라 보겠다고 결심한 이후부터, 그 과정이 귀찮기도 하고 힘들기도 해도 막상 시작하자 코 앞에 닥친 일 외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짐을 챙기고 먼 함양까지 가면서도 별 생각이 없었다. 그저 좀 귀찮았다. 등산로를 따라 산을 오르기 시작하면서도 별 생각이 없었다. 그저 좀 힘들었다. 눈이 쌓인 겨울 산을 천천히 한 발, 한 발 딛는 것에만 신경썼다. 주머니에 넣은 초콜릿을 한 알씩 오독오독 먹어가면서.

등산길 초입에서는 늘 주위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눈이 쌓인 계곡의 바위들, 나뭇가지들, 그 틈으로 보이는 시린 하늘. 등산로 옆의 작은 초목들도 성실하게 눈을 이고 있고, 그런 것들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바람이 불면 볼이 따갑지만 그 바람에 쌓여있던 눈발이 날리는 것은 간지럽고 재미있다. 산에 오를 때는 입을 다물고 코로 숨을 쉬어야 한다고 배웠지만 등산길 초입에서는 그런 것들이 감탄하고 반응하느라 연신 입을 열고 웃고 떠든다. 그러나 등산로의 각도가 조금 달라지고, 중간중간 서 있는 안내판에서 등산을 시작한 지점이 점점 멀어지고 목표지점인 대피소가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하면, 주위의 풍경이 달라진다.

'풍경이 달라진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다. 우선은, 정말로 풍경이 달라진다. 어느 정도 산을 오르면 골짜기를 벗어나 산등성이로 올라간다. 그 정도까지 올라가면, 한 쪽에 버티고 서 있던 벽이나 저 아래에 보이던 계곡이 없어지고 양 옆으로 탁 트인 풍경이 나타난다. 나뭇가지에 가린 하늘이 아니라, 활짝 열린 하늘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물론 산 아래의 모습도 멀리, 조그마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키가 아주 크던 너무들은 이제 고도가 높아지며 추워져서인지 점점 작은 나무들로 바뀌어 풍경이 달라지는 것에 일조한다. 막히는 곳이 줄어들어 바람도 더욱 많이 분다.

다른 의미는, 풍경을 받아들이는 내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 정도로 등산을 하면 등산길 초입의 씩씩했던 나와는 완전히 다른 상태가 된다. 산등성이에 올라와 그 길을 따라 걸으면서, 그 탁 트인 풍경과 땀과 열기를 식히는 시원한 바람에 감탄하는 것은 짧다. 남은 긴 시간동안은 그야말로 앞과 내 발 밑만 보면서 걷는다. 주요 풍경은 내 눈 앞의 길, 내 발 밑의 눈 쌓인 땅이다.풍경에 대한 감탄보다는,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해가 지기 전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더 움직이는 게 중요해진다. 해가 기울어지면서 푸를 정도로 하얗던 눈이 노르스름하게 보이면, 마음도 급해진다. 어떤 마음으로 무언가를 보는 게 이렇게 중요하다.


반복되는 바람, 반복되는 눈 쌓인 길, 반복되는 나뭇가지, 기운이 없고 무거워지는 다리. 자극은 부족하고 몸은 지쳐갈 때, 새로운 자극이 들어왔다. 짤랑, 분명 의성어로 표현하면 이렇다. 짤랑, 짤랑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불규칙하게 들렸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반짝이는 새로운 자극이 가득했다.

키가 작은 나무들이 가지마다 모두 얼음 덩어리를 물고 있었다. 지리산의 겨울 상고대였다. 가지마다 물기가 얼어붙어 투명한 얼음 덩어리들이 가지를 둥그스름한 기둥처럼 굵직하게 코팅해 놓았다. 그 얼음 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얼음 덩어리들끼리 부딪히면서 짤랑, 짤랑 하는 소리를 냈다. 가느다란 가지에서는 물기가 가지를 타고 흘러내려가 그 끝에서 물방울이 된 채로 얼고 또 그 얼음에 물방울이 덧씌워져 얼기를 반복했는지 방울처럼 둥그스름하게 생긴 얼음들이 매달려 짤랑거렸다. 기울어지는 햇빛이 얼음들을 비추고 있어, 투명한 얼음들이 햇빛을 이리저리 굴절시키고 반사시키면서 반짝거렸다.

산에서 들을 일이 전혀 없을 것 같은, 맑은 딸랑거리는 소리와 투명한 얼음을 투과해 갈라지고 흩어지는 햇빛. 얼음 너머의 넓은 지리산의 풍경과 서늘한 바람. 그것이었다. 나는 확신했다. 그 풍경과 소리와 빛과 바람을 잊을 수 없을 것임을.

산장에 예약을 해 놓았고, 해가 지기 전에 빨리 산장에 도착해야 했다. 그런데도 온도와, 습도와, 시간과, 산에 오른다는 그 상황까지 모든 것들이 맞아야 하는 그 짧은 순간에 보고 들을 수 있는 것들을 두고 가는 것이 쉽지 않아 한참을 머물렀다.

겨울이 되면 가끔 생각한다. 나는 그 이후에 한 번도 지리산에 오르지 않았고,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도 보지 못했다.

올해 지리산에 간 누군가는 그 시간에 그 자리에서 내가 봤던 그 풍경과 얼음에 굴절되는 햇빛을 보고, 그 바람을 느끼고, 그 딸랑거리는 소리를 들었을까. 아마 아무도 그것들을 고스란히 느끼지는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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